니시테츠 전철을 타고 야나가와로 향하는 여러분께 특별한 안내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여행 중에 들으면 도움이 될 이야기입니다. 야나가와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시간을 이용해 여행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 봅시다.
여러분은 니시테츠와 야나가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현재 여러분이 타고 계신 니시테츠 덴진-오무타선이 개통된 것은 약 100년 전. 처음에는 덴진에서 구루메까지밖에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오무타를 거쳐 구마모토까지 노선을 연장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특히 오무타는 탄광 산업으로 번성했던 지역이라, 철도회사에 오무타와 덴진을 연결해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니시테츠는 야나가와를 포함한 지쿠고 지역의 여러 사철(私鐵)들을 합병하며 남쪽으로 노선을 확장해 갔습니다. 야나가와역까지 연장 개통된 것은 1937년이지만, 당시 야나가와는 옛 성곽 도시였기에, 사람들이 생활하는 중심부에 철도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곽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현재의 위치에 야나가와역이 세워졌습니다. 그 시절, 야나가와로 운행이 시작된 열차 중에 ‘모21’이라는 차량이 있었습니다. 나무 향이 나는 목조 객차로 둥글고 귀여운 생김새였습니다. 가볍고 시속 90km의 고속 운행도 가능해 특급열차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야나가와는 관광지로서의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야나가와가 관광지로 변하게 된 계기는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1954년에 개봉된 영화 ‘가라타치의 꽃’은 야나가와 출신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의 유년 시절을 그린 작품인데, 촬영을 위해 옛 야나가와의 전통적인 수로 놀이를 재현했던 것이었습니다.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그 장면이 화제가 되었고, 많은 관객들이 “나도 수로 놀이를 해보고 싶다”라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재 뱃놀이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니시테츠도 출자자로 참여해 최초의 뱃놀이 관광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니시테츠 전철을 타고 영화 속 장면을 체험하기 위해 야나가와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당시 사람들처럼 차창 밖 풍경을 즐겨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익숙한 풍경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바타케역을 지날 때쯤 차창 밖 풍경에 주목해 주세요. 점점 논밭이 펼쳐지다가 다이젠지역을 지나면 수로가 눈에 띄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 이 앱에 표시된 지도 화면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보세요. 지도를 아무리 확대해도 사방이 수로로 가득합니다. 그야말로 ‘수향(水郷)’이라 부를 만한 풍경입니다. 그런 수향의 정취는 야나가와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짙어지며, 수로가 철길을 따라 길게 뻗어 있거나 철길과 교차하며 흐르는 등, 얽히고설킨 수로와 철도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통 열차만 정차하는 가마치역을 지나면, 철로도 단선이 됩니다. 야나가와역에 도착하기 직전에, 쇼와 시대부터 남아 있는 나무 전봇대를 발견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런 옛날 그대로의 수향 풍경 속을 열차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니시테츠 오무타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 그린’ 색의 열차를 떠올릴 것입니다. 왜 아이스 그린일까요? 이는 하늘과 논밭 지대 사이를 길게 달리는 철도이기 때문에,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아이스 그린 색으로 칠해졌다고 합니다.
야나가와역을 지나면 오무타역이 있습니다. 오무타의 ‘牟田(무타)’는 ‘습지대’를 의미합니다. 야나가와 역시 아리아케해(有明海)를 접한 습지 지역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조수간만의 차를 자랑하는 아리아케해에 마주해 있어 습하기 때문에, 수로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가이드인 ‘★ 뱃놀이를 하기 전에’에서 자세히 들려드리겠습니다. 야나가와를 걷기만 해서는 이 지역이 수향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야나가와의 수로는 단순히 역 주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나가와에서는 수로를 “호리와리”라고 부릅니다. 옛 성곽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는 아리아케해에 마주한 수로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니시테츠 전철을 타고 야나가와로 향하는 여러분은 그 광대한 수로의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나가와역에 도착한 후에는 실제로 수로의 도시를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수로는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오래전부터 번성했던 교마치(京町)와 아사히마치(旭町) 등의 지역에서는 상점 뒤편에도 수로가 흐르고 있습니다. 사실, 야나가와의 수로는 1970년대에 소멸 위기에 처했지만, 사람들의 노력으로 기적적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 과정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야나가와 수로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 야나가와를 방문하신다면 우선 뱃놀이를 체험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하지만 뱃놀이 외에도 야나가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오하나(御花)’입니다. 오하나는 과거 야나가와성의 성주였던 다치바나 가문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료칸입니다. 그 역사는 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5대 번주 다치바나 사다요시가 일족의 거처를 야나가와성 근처로 옮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이곳은 사계절 꽃이 피어 ‘오하나바타케(御花畠)’라 불리며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하나’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오하나의 대연회장은 고급 기소히노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바닥에 깔린 다다미를 걷어내면 능무대(能舞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대연회장에서는 국가 지정 명승인 정원 쇼토엔(松濡園)'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정원은 14대 도모하루(寛治)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센다이의 마쓰시마 풍경을 본떠 만들었다고도 전해집니다. 연못의 물은 운하에서 끌어왔으며, 정원 내에는 약 280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수령 200년에 이르는 고목들입니다. 또한 정원에는 약 1,500개의 정원석과 14개의 석등이 있으며, 대연회장 앞에 놓인 거대한 바위는 과거 야나가와성의 천수각을 떠받치던 석재였습니다.
오하나는 흔히 뱃놀이의 도착 지점이 되므로, 뱃놀이를 마친 후 대연회장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을 꼭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나가와를 알기 위해서는 다치바나 가문의 역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다치바나 가문의 뿌리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규슈 지역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아 오이타를 거점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후 무로마치 시대와 전국 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부침을 겪었고, 벳키 도세츠(戸次道雪)가 그 이름을 계승하여 다치바나 도세츠(立花道雪)라 칭하게 되면서 현재의 다치바나 가문이 시작되었습니다.
2대 번주가 된 다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는 14살에 긴치요(誾千代)와 혼인하였으며, 다치바나 긴치요 역시 여무장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이후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전장에서 활약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신임을 얻어,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지쿠고 지역을 다스리는 번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미 고인이 된 히데요시에 대한 충성을 지키며 도요토미 측에 가담한 탓에 패전하였고, 결국 야나가와성을 넘겨주게 됩니다.
이후 야나가와성에는 오카자키성(岡崎城)의 성주였던 다나카 요시마사(田中吉政)가 입성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다나카 다다마사(田中忠政)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면서, 다치바나 무네시게가 53세의 나이에 다시 야나가와성의 성주로 복귀하게 됩니다. 전국 시대의 역사 속에서 이처럼 권좌에 다시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그 이후 다치바나 가문이 400년 동안 번주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오하나 부지 내에 있는 다치바나 가문 사료관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키워드는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 입니다.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는 오하나 근처의 오키하타(沖端)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상경하여 24세에 시집 『쟈슈몬(邪宗門)』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추억(思ひ出)』을 출간하며 큰 호평을 받아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단가, 동요, 민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남기며 국민 시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쿠슈는 말년인 1941년 봄, 수십 년 만에 고향인 야나가와를 방문합니다. 아마도 새롭게 개통된 니시테쓰 전철에 타, 오랜만에 마주하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시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기타하라 하쿠슈가 고향 야나가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기타하라 가문은 대대로 야나가와 번의 납품업체 역할을 맡았으며, 아버지 대부터 술 제조업을 비롯해 생선 도매업과 정미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타하라 하쿠슈가 16세였던 시절, 오키노하타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면서 기타하라 가문의 집이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결국 파산하게 되었는데, 이후 기타하라 가문은 야나가와를 떠나 상경하게 됩니다. 기타하라 하쿠슈의 생가는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정미소, 통조림 공장, 조림 공장 등으로 활용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물이 훼손되었고,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자 "그렇게 되면 아쉬우니 이곳을 보존해야 한다"라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이에 야나가와시는 즉시 현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여 현 사적(県史跡)으로 지정받았습니다. 동시에 보존회를 결성하고 복원을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전국에서 총 2,910만 엔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이에 따라 무사히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는 생가를 보존하는 것과 동시에 기타하라 하쿠슈의 문학 자료와 유품을 수집 및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근에는 ‘하쿠슈 기념관’을 개관하여 야나가와의 역사와 오키노하타 지역의 민속 문화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기타하라 하쿠슈의 작품과 인간상을 조명하며, 그의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키워드는 ‘사게몬’입니다. 사게몬은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이 그녀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며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전통 장식입니다. 즉, 야나가와 지역의 히나마쓰리(雛祭り)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강 위에 히나단(雛壇)과 함께 '사게몬'이라 불리는 장식을 매달아 두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사게몬은 기모노 천 조각으로 만든 길조를 비는 상징물과 형형색색의 실로 감싼 공 등이 포함되며, 1줄에 7개의 사게몬을 매달고, 이를 7줄로 늘어놓아 총 49개를 만듭니다. 더불어, 중앙에 큰 공 2개를 추가하여 51개로 완성됩니다. 이는 과거 평균 수명이 50세였던 시절,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에도 시대 말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매년 히나마쓰리 시즌이 되면 사게몬을 장식한 집들에 들르는 '사게몬 순례'라는 행사가 열려 거리가 축제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비록 시즌이 아니더라도, 사게몬 장식을 판매하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보세요.

마지막으로, 야나가와의 미식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야나가와 장어’가 가장 유명합니다. 오래전부터 야나가와에서는 아리아케해의 바닷물과 지쿠고강 등의 담수가 섞이는 하구에서 잡히는 천연 장어를 ‘아오’라고 불렀으며, 매우 귀한 식재료로 여겨졌습니다. 탄탄한 육질에 감칠맛이 도는 은은한 바다 내음을 지니고 있어,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에도 시대부터 야나가와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으며, 당시에는 장어가 번주의 재정 기반 중 하나였다고도 합니다. 
야나가와의 장어 요리는 "장어 세이로무시(나무찜 요리)" 방식으로 조리됩니다. 먼저, 양념을 더한 밥을 찐 후, 갓 구운 장어구이를 올려 다시 한번 찝니다. 그리고, 화려한 색감의 얇게 썬 계란 지단을 곁들이면 완성됩니다. 장어를 굽고 찌는 조리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간토와 간사이 장어 요리의 장점을 모두 살린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간토 지방에서는 장어를 등 쪽으로 갈라 손질하는 반면, 간사이 지방에서는 배를 가르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겁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이유에 대해, ‘간토에서는 무사의 할복을 연상시키는 배 가르기가 아닌 등 쪽을 가르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고 하며, 반면 간사이에서는 ‘서로 배를 터놓고 이야기하자라는 의미에서 배를 가르는 방식이 정착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야나가와의 장어는 어떤 방식일까요?
야나가와 장어 역시 등을 가르는 방식을 따릅니다. 야나가와에서 처음 이 조리법을 고안한 사람이 간토에서 먹었던 장어 요리를 재현했기 때문에. 또한 야나가와가 성곽 도시이기 때문에 할복을 연상시키는 조리법을 피하려 했기 때문에. 이렇듯 다양한 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야나가와만의 독특한 장어 요리를 꼭 한 번 맛보시길 바랍니다.
한편, 과거에는 미꾸라지 요리도 흔하게 먹었다고 합니다. 도쿄의 서민 지역에서 유명한 ‘야나가와 나베’라는 미꾸라지 요리는, 야나가와 사람들이 도쿄에서 향토 음식을 전파하면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하나 유명한 야나가와의 별미는 ‘아리아케 김’입니다. 야나가와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김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아리아케해의 풍부한 해양 자원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뱃놀이의 종착지이기도 한 오하나에서 수로를 따라 조금만 오키하타 방면으로 걷게 되면, 성곽 도시에서 어촌 마을로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김뿐만 아니라, 아리아케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어종도 맛볼 수 있으며, 이러한 희귀한 물고기들을 전시하는 작은 수족관도 있습니다. 부디 뱃놀이를 한 후에도 야나가와의 매력을 계속해서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자, 지금 여러분이 타고 계신 열차는 어디쯤 달리고 있나요? 하나바타케역(花畑駅)을 지나면서 변해가는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시면서, 시간이 되신다면 꼭 ‘뱃놀이를 하기 전에’ 가이드를 함께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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