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러분, 토롯코 열차가 달리는 것보다 훨씬 먼 옛날, 호즈강은 무엇을 운반하고 있었을까요? 그 전에 호즈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땅에는 이런 신화가 남아 있습니다.
──옛날 옛날에, 가메오카 땅에는 큰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 물은 붉은 색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단파 = 붉은 파도」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께서 산을 잘라 길을 내어 호수의 물을 강이 되게끔하여 교토를 향해 흐르게 했습니다. 그렇게 호수였던 장소에 평야가 생겨 단바국이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신화는 현대의 지질학에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가메오카에서 교토로. 마침내 흐르기 시작한 호즈강은, 지금 차창에서 보이는 산들의 융기작용에 의해 구불구불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수백만년의 세월이 흘러, 나라의 도성, 나라노 미야코에서는, 교토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왜 나라노 미야코를 떠나야 했을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목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수도 주변산의 나무를 다 베어 버려 더이상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탓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건축을 위해서는 물론, 난방이나 요리를 하는 데에도 목재는 없어서는 안 되는 연료였습니다.
거기서 주목한 곳이 가메오카, 바로 단바의 나무였습니다. 우수한 목재의 질과, 이를 운반할 수 있는 호즈강이 있었기때문에 교토에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 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바의 산, 그리고 호즈강이 없었다면 교토에 수도가 만들어질 일은 없었다. 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교토로 수도가 옮겨지면서 호즈강은 이전보다 더 많은 목재를 운반하게 되었습니다. 운반할 땐 먼저 잘라낸 나무를 가공하여 통나무 뗏목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이 타고 호즈강을 저어가는, 생명을 건 래프팅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때로는 수위가 올라 날뛰는 강과 싸우며, 급류를 젓는 사공들의 모습을. 그렇게 목재가 운반되어, 쿄노 미야코, 현재의 교토가 만들어진 것 입니다. 이어서 사가노의 유래이기도 한 사가 천황이 즉위하게 됩니다.
토롯코 열차가 달리기 훨씬 오래 전부터 호즈강이 운반하던 중요한 화물은 「목재」였습니다.. 수도뿐만이 아닙니다. 목재의 운반으로 수많은 절을 비롯하여 교토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호즈강을 에너지원으로서 교토는 발전해 나갔던 것입니다.
다음 전환기는 에도 시대. 사가노의 한 상인이 호즈강의 정비에 투입됩니다. 강의 급류를 정해진 길처럼 조종하는 높은 기술력으로, 쌀, 야채, 생선 등을 실어 소형배로 운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호즈강은 단바와 교토를 연결하는 화물의 길로서 더욱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메이지 시대가 됩니다. 철도가 생기고, 화물열차가 달리기 시작하여, 화물의 길로서의 호즈강의 역할은 끝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마침, 일본을 방문하던 외국 요인들이 “배에 타보고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에도시대에 정비로 인해, 안전성을 확보한 호즈강의 운항은, 화물 대신에 손님을 태우게 되었고, 엄청난 인기를 얻게됩니다. 그렇게 오늘까지 일본 관광의 최전선으로서 뱃놀이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